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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분석-'김씨표류기'와 자장면 시키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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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해피마인드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757회   작성일Date 21-07-26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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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김씨표류기' 포스터


    오래전 밤섬에 숨어살던 어떤 사람이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난다. 스토리는 아마도 거기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영화 ‘김씨표류기’(2009년)는, 4차원 소녀와 마라도의 자장면 시키신 분 광고와 병 속에 쓴 편지(the letter in a bottle), 그리고 로빈슨 크루소와 영화 ‘러브 액추얼리’의 문자 사랑고백 따위의 다양한 모티프가 독특하게 반죽되면서, 단조로운 줄거리가 독창적인 가지를 친다.

    자살하려 한강에 투신한 김씨(정재영)가 밤섬에 표류되어 나오지 못한 채 거기서 삶을 살아가다가, 환경정비 요원들에게 발견되어 끌려나오게 되는 이야기는, 이 시대의 루저를 표상하는 기막힌 에피소드이지만, 영화는 한 사람의 절망을 클로즈업하려고 나선 건 아니다. ‘김씨표류기’는 흥미로운 상징들이 다채로운 방식으로 저마다 의미심장한 면모를 드러내는, 빼어난 다면체 영화이다.

    이해준감독이 우선 주목한 것은 ‘섬’이라는 개념이었을지도 모른다. 밤섬은 서울 한복판을 흐르는 한강의 가운데에 있는 섬이다. 서울이란 곳이 인구가 밀집해있는 거대도시인데, 그 속에 섬이 존재한다는 점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영화는 김씨가 표류한 직후, 사방에 빌딩과 교각, 그리고 도로의 자동차들이 둘러서있지만 전혀 구조를 요청할 수 없는 밤섬의 구조적 특징을 부각시킨다. 도시 한복판에 버려진 섬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는, 그 공간만으로도 이미 역설적인 뉘앙스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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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김씨표류기' 포스터


    김씨는 섬이다. 삶에 내몰려 자살을 택할만큼 절망적 고립에 다다른 하나의 섬이다. 서울은 그를 하나의 섬으로 만들었고 결국 그는 물 위로 뛰어내렸다. 그런데 죽지않고 흘러서 밤섬에 닿는다. 섬이 섬에 이르러 그 고립을 마침내 수용하고 나름의 삶을 살아내기로 결심한다. 여자 김씨인 김정연(정려원) 또한 하나의 섬이다. 얼굴에 흉터를 지녀 사회생활을 포기하고 방에 틀어박혀 ‘싸이월드’만 하는 자폐적인 또하나의 루저다. 싸이월드에서 다른 사람의 얼굴을 캡처해와 자신의 얼굴인 것처럼 위장하면서 찬사의 댓글을 즐기지만, 결국 신상털기에 걸려 무자비한 악성댓글을 만난다. 그녀 또한 서울의 인파 속에서 홀로 섬처럼 떠있는 존재이다. 이 여인은 답답한 지구를 탈출하고 싶은 욕망을 환상으로 치환한다. 그녀의 4차원적인 열망은 망원카메라로 밖을 엿보는 일에 몰두하게 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밤섬의 모래밭에 적힌 HELP라는 글자를 본다. 밤섬과 김씨와 김정연. 셋은 저마다 하나의 섬이지만 외부의 철저한 소외 그 내부에서 은밀하게 소통한다. ‘섬’은 무엇인가. 대도시 서울과 문명에 대한 묵직한 비판이다. 표류는 소외받은 모든 삶의 양상이다.

    영화가 지닌 가장 인상적인 상징은 ‘생명’이다. 생명은 죽음을 이기는 강인한 무엇이다. 쓰레기같은 인간과 인간이 버린 쓰레기가 함께 떠밀려와 서로 동거한다. 좌초된 오리배처럼 말이다. 문명이 버린 폐기물은 밤섬에서 김씨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요긴한 도구가 된다. 밤섬의 ‘자연’이 그를 품어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버섯을 발견하고 죽어도 상관없다는 심정으로(독버섯이면 아마도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그것을 뜯어먹는다. 그러나 죽지 않았다. 도시는 그를 버렸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았던 셈이다. 그는 본격적인 생존에 나선다. 원시시대의 어로와 수렵을 흉내내본다. 하지만 생명을 죽이는 실력은 ‘루저’답게 그리 시원치 않다. 폐기물을 먹고 죽은 물고기와 물고기의 일부를 뜯어먹고 죽은 새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주워 요리에 쓴다. 이 대목은 인상적이다. 여기엔 폐기물 오염에 대한 의미심장한 비판이 숨어있다. 죽은 물고기와 죽은 새를 먹고도 멀쩡한 인간의 강한 내성(耐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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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김씨표류기' 포스터



    개그맨 이창명이 마라도까지 가서 자장면 시키신 분을 찾는, 유명한 이동통신 광고. 이 영화는 패러디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자장면집 ‘진짜루’는 네이버를 쳐보면 서울에만도 네 개 이상은 있는 실명의 식당 브랜드이다. ‘진짜루’는 자장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가게란 뜻이겠지만, 영화에서는 무인도 밤섬에 자장면을 배달할만큼 ‘한다면 한다’는 성실성을 지녔다는 뜻으로 의미가 확장된다. 또한 거짓과 식언(食言)이 난무하는 도시에, 그래도 말 한 마디의 진실성이 소통되는 김씨 남녀 에피소드의 분위기를 높여주는 맛도 있다. 철가방을 든 진짜루 종업원(박영서)는 김정연의 주문을 받은 뒤, 오리배를 타고 밤섬에 자장면을 배달하러 간다. 비록 징징대기는 하지만 징한 직업의식을 보여준다. 그런데 거기서 만난 털북숭이 김씨가 자장면을 단호히 거부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토록 자장면에 환장하던 사람이 갑자기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생물적으로 그런 자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건지 의문이 들긴 하지만, 영화는 그가 진행하고 있던 나름의 자장면 프로젝트의 감동에 포커스를 맞추기 위해 그런 방법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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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김씨표류기'의 한장면



    김씨가 자장면을 그리워하게 된 것은, 짜파게티 봉지 하나를 발견하게 되면서부터이다. 그 봉지를 보는 순간, 그 음식에 대한 식감이 무섭도록 되살아났다. 자장면의 식감에 대해선 필자가 오래 전에 썼던 한 글에서도 표현한 바가 있다.

    “흑갈색의 신비한 자장 양념에서 풍겨나오는 형언할 수 없이 강렬한 유혹이 사람을 기죽인다. 검은 설렘이랄까, 젓가락이 버무려주기를 기다리는 면발들이 똬리튼 모양새는 첫날밤 신방에 들어앉은 신부처럼 순결하고 부끄러움으로 가득 차 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걸쭉한 국물을 면발과 섞는 동안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위액과 침샘이 충분히 그 뚜껑을 열고 이 귀한 손님을 기다린다. 자장면에는 맛있다는 말로는 부족한 무엇이 있다. 거기에는 인간 식욕의 빈틈을 파고드는 검은 국물의 공격적인 향미가 도사린다. 중국 본토에는 아예 없다는 둥 있어도 생판 다르다는 둥 말도 많은 그 국물맛이다. 이런 가공스런 무기를 개발한 중국인에게 경의를 표한다. 남의 나라 사람들의 위장 속을 어찌 그리 꿰뚫을 수 있단 말인가. 한국사람 치고 이 자장의 유혹에서 자유로운 이가 몇이나 되랴? 저 위대한 자장을 척척 버무리는 친구의 젓가락질은 당당하고도 도도하다. ”(이상국의 ‘자짬딜레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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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김씨표류기'의 한장면



    여하튼 김씨는 지난 시절 자장면을 외면하던 시절의 모습이 떠오르며 그때의 자신이 저주스럽도록 미워지기까지 했다. 봉지에 적힌 첨가물들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그 맛을 사무치게 기억해낸다. 자장면엔 스프가 남아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버무릴 면이 없는 것이다. 답답한 심정으로 무엇이든 면처럼 뽑아낼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그 섬에 그런 것이 있을 리 없다. 이때 로빈슨 크루소의 통찰이 김씨에게 덮쳐온다. 새똥 속에 들어있는 씨앗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들 속에 곡식 씨앗도 있으리라. 자신이 기거하고 있는 오리배 위에 마구 싸놓은 새똥들을 수거한다. 쓸모 없는 한도 초과의 신용카드들을 꺼내, 유감없이 똥을 긁는다. “오랜만에 카드 한번 긁어보네”라는 유머를 잊지 않으면서...그리고는 밭고랑을 만들어 거기에 새똥을 심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밭에서 옥수수가 피어난 것이다. 그것으로 면을 만들어, 드디어 자장면 요리에 성공하는 ‘인간승리’는 영화일망정 짜릿한 성취감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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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김씨표류기'의 한장면



    단순히 관객의 웃음을 이끌어내기 위한 시추에이션 코미디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저 바탕에는 생명에 대한 경배가 숨어있다. 불모의 땅에 옥수수를 심어 음식을 만들어낸 인간은, 척박함에 굴하지 않고 자연과 생명을 일궈온 인류의 도도한 전통을 웅변하고 있는 셈이다. 여자 김정연이 폐칩생활 속에서 문득 옥수수를 키우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은, 김씨의 농업에 대한 무한존경의 감정을 드러낸 것이다. 폐기물 도구를 이용한 석기시대를 거쳐, 곡식을 심고 거두는 농경시대로 접어든 김씨의 감격은 인상적이다. 도구인간의 쾌적함을 누리려는 듯, 골프공과 채를 만들어 한가한 한 때를 즐기는 풍경도 그렇다.

    또 하나 이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소통’이다. 김씨는 세상에게서 따돌림을 받고 밤섬에 표류한 존재이다. 그의 메시지와 그의 몸짓과 그의 목소리는 전혀 서울이란 도시에 전해지지 않았다.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를 날마다 지켜보고 그의 행동과 마음을 읽어내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김정연 또한 현실적인 소통을 포기하고 자기를 감추고 가면으로 만족을 얻는 가짜 소통에 열중하는 삶의 표류자이다. 그녀는 김씨의 메시지와 몸짓을 읽으면서 그와 소통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른다. HELP와 HELLO, HOW ARE YOU?, FINE THANK YOU, AND YOU? 이런 초보 영어의 단순대화들은 유머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실은 기초 소통의 원천감정을 회복하는 풍경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불편하고 단조로우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아날로그 소통이 이 둘의 감정을 풍부한 유대감으로 묶는 것은 멋진 아이러니이다. 이 소통의 비밀이야 말로, 영화가 공들여 보여주고 있는 하나의 메시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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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김씨표류기'의 한장면


    이 영화는 어떤 사람에게는 시시할지 모른다. 스토리를 쫓아가며 흠을 잡아내려면 밤섬에 쌓인 폐기물보다 더 많은 것을 찾아낼 수도 있다. 대신 절망과 희망의 게임, 섬과 뭍의 게임, 고립과 소통의 게임, 죽음과 생명의 게임들로 얽힌 퍼즐들을 가만히 즐기노라면, 서울에 사는 우리들의 현실과 꿈과 미래가 뒤엉키며 가슴 아프지만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는 것을 알게될지도 모른다.
     
    출처: 아시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