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계급사회]청소년들의 일그러진 ‘향유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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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특정 브랜드 옷을 입는 만족감보다 무리로부터 이탈당하지 않으려고 선택
중학교 2학년인 반장 지민이는 어느날 담임의 호출을 받았다. 담임은 지민이에게 “A라는 학생이 아마 ‘왕따’인 듯하니, 반장이 함께 밥도 먹으면서 어울려보라”고 한다.
지민이는 반장의 책임감에 흔쾌히 그렇게 하기로 하고 며칠간 정말로 순수한 마음에서 A와 함께했다. 예전 같으면 지민이의 모습은 ‘본받을 친구’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시대는 달라졌다. 이 착한 행동 다음부터 지민이의 고민이 생긴다. 친구들이 지민이에게 “왜 저 찌질한 인간과 함께 노느냐, 계속 그럴 거면 우리랑도 놀지 말자”며 매우 거칠게 추궁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찌질하다’는 것은 ‘폼나게’, 즉 그때그때 유행하는 브랜드의 옷을 입지 못한다는 걸 뜻한다.
이 사례는 요즘의 청소년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함께 어울리지 못하는’ 학생들이야 예전에도 늘 존재했지만, 최소한 그 학생에게 누가 다가가는 걸 집단적으로 문제삼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청소년들은 특정 문화의 상징을 소유하지 못하는 것을 ‘자격 결핍’의 증거로 받아들인다. 게다가 그 결핍 정도가 심하면 ‘차별’하는 것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유명 브랜드의 패딩 점퍼를 입은 청소년들이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이제 청소년 문화에서는 ‘내가 이 멋진 옷을 입었다’고 향유하는 만족감보다 단지 ‘타인에게 린치를 당하지 않기 위한’ 일종의 ‘안심’으로서의 만족감이 중요하다. 더 정확히는 무리로부터 이탈당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객관적 문화자본’의 예를 들면 10대들에겐 특정한 브랜드 의류가 해당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을 단순히 ‘보유’했다는 자체로 그 문화가 ‘자본’이라는 타이틀을 붙일 수 있는 ‘권력’으로 되지는 않는 데 있다.
단순히 미술작품을 ‘관람’하는 데 의미를 두는 것을 넘어 그 작품이 고귀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정도일 때 이 ‘문화자본’을 ‘체화’해 권력으로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입지 않으면 큰일나는 상황’만 존재
지민이 학급의 풍경에선 객관적 문화자본만 존재할 뿐, ‘체화된 문화자본’은 없는 상태다. 애초에 ‘옷’ 자체가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 옷이란 대상을 대하는 ‘시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옷’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예전부터 있어왔고, 그 ‘이미지’를 별나게 확장시킬 수 있었기에 인간은 동물과 다르게 예술을 창조하고 공유할 수 있었다. 문화적·상징적 의미가 있으니 ‘옷 좀 달라졌다고’ 기분도 좋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청소년에게는 옷을 ‘입는’ 이유가 없다. ‘입지 않으면 큰일나는’ 상황만이 존재한다.
다른 한편으로, 과연 A를 따돌리게 만든 ‘동일 브랜드의 옷’을 입는 그 무리들이 서로 문화자본을 소유했다고 구별되는지를 물어보자. 대다수의 청소년들은 (물론 어른들도 그렇지만) 저 편의 상위 10%와 자신이 구별되었던 느낌에 따라 과감한 모방을 시행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평범한 90%는 결국 제자리에 있다. 다만 입은 옷만 달라졌을 뿐, 그리고 그것 때문에 평범하게 존재하는 자격만이 상향조정되었을 뿐이다. 위쪽의 10%는 아래층 무리들이 아등바등하는 향유물이 대중화가 되고 나면 자연스럽게 다른 대상을 찾는다. 청소년의 ‘노스페이스’ 패딩 열풍 때 강남은 예외였다고 하지 않는가?
이런 어그러진 상황이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듯하다. 청소년들의 주변은 온통 자기계발이라는 이름으로 기성세대가 ‘성공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가르쳐주기에 바쁘다.
그 결과 모두가 ‘영혼 없는’ 문화적 향유의 강박에 시달린다. 하지만 그 향유가 ‘권력’을 보장하지 않으니, 어떻게든 향유하지 않은 자를 찾아내 강제적으로 밀어내야만 자신이 높아지는 괴상한 상황이 발생한다.
이렇게 자라는 친구들이 나중에 어른이 된다고 가정해보자. 아마 그때쯤 되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문화’라는 것의 이미지는 매우 달라져 있을 듯하다. 그리고 그때서야 ‘사회구조’를 걱정한다면 아마도 때는 한참 늦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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