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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 계급사회]“행복은 잘사는 순이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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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해피마인드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967회   작성일Date 21-07-26 15:33

    본문

    ㆍ경제수준이 학업성적·교우관계에 영향… 스트레스 등 심리적 영역에서도 ‘빈부격차’

    어른들의 경쟁사회에 진입하도록 준비하는 시기, 청소년기는 사회에 깊게 뿌리박힌 경제적 수준의 격차를 온몸으로 체득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부모나 보호자들의 경제적 생활수준은 청소년들의 일상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학교에서의 학업성적뿐 아니라 또래집단 안에서의 평가도 가정의 경제수준에 따라 달라진다. 청소년들이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삶을 바라보며 느끼는 행복감까지, ‘돈’은 청소년기 자녀의 삶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척도가 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민은기군(가명·14)은 “사는 집에 따라 같이 노는 친구도 다르다”고 말했다. 단순히 등·하굣길이 같은 방향이거나 가까운 동네 친구라 친하게 지내게 된다는 뜻과는 거리가 있다.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준다’는 어느 
    아파트 광고문구가 오히려 이 상황에 들어맞는다. “우리 아파트 ×××동은 임대(아파트) 사는 애들인데 초등학교 때부터 그 동 사는 애들이랑 놀지 말라는 말이 많았어요.” 


    민군의 아파트는 지역의 주택 
    재개발사업으로 들어선 아파트다. 재개발 후 분양된 동이 대부분이지만, 재개발 이전 그 구역에 살던 세입자나 영세계층에 임대하는 동도 단지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임대동은 분양동과는 입구도 다르고 단지 내 시설도 다르다. 초·중학생 때부터 자연스레 사는 곳의 차이를 체감할 수 있는 구조다.

    수면시간과 여가 활동에서도 차이 보여
    민군의 말에 따르면 친구 무리가 나뉘기 시작하는 때는 초등학생 때부터다. 임대동인지 분양동인지, 그것만이 유일한 기준은 아니었다. 학원에 다니는지 아닌지, 다닌다면 어느 학원에 다니는지에 따라서도 어울리는 무리가 달라졌다. 

    물론 민군과 친구들이 의식적으로 다른 무리와 거리를 둔 것은 아니다. “같이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더 친한 거고, 학원 마치고 놀러가는 시간도 비슷해서 자주 보는 친구하고만 보게 돼요.” 

    같은 
    온라인 게임을 하더라도 노는 무리가 다르면 접속하는 시간도, 자주 가는 PC방도 다르다. 세세한 차이가 생기는 가장 밑바탕에 가정의 경제수준 차이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 차이 때문에 청소년들의 생활상도 달라질 것이라는 짐작은 
    통계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생활상의 차이는 단순히 학습시간이나 성적, 사교육 여부 등에 국한되지 않았다. 

    잠자는 시간이나 아침식사 여부, 운동하는 시간 등 일상적인 활동에서도 경제수준이 낮은 가정의 청소년들일수록 더 필수적인 부분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2013 아동·청소년 인권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경제수준에 따른 아동과 청소년들의 생활상의 수준 차이가 명확하게 나타났다. 

    160여개의 조사항목 가운데 약 80% 이상, 대부분의 영역에서 가정의 경제적 수준이 낮아질수록 청소년의 삶의 질을 측정하는 지표도 나빠지는 양상이 확인됐다. 

    특히 스트레스 인지, 우울감 및 자살 생각 등 정신적·심리적 영역에서 저소득층 청소년일수록 문제가 심각했다. 쉽게 말해 못사는 집 청소년들은 스트레스도 더 많이 받고 더 우울해 하며,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인식은 낮았다.

    이러한 양상은 종합적으로 행복한 정도를 묻는 설문에 대한 응답률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다. 경제적 수준이 상층에 속하는 청소년들은 ‘행복하다’(매우 행복·행복한 편)고 응답한 비율이 86.9%였고, 중층에선 81.3%로 나왔지만, 하층에선 65%로 나와 큰 차이를 보였다. 

    하층에 속하는 청소년 중 35%가 ‘행복하지 않다’(전혀 행복하지 않음·행복하지 않은 편)고 응답한 데 비해 상층과 중층에선 각각 응답률이 13%, 18.7%였다. 경제적 수준이 중간 아래로 내려갈수록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청소년들의 비율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모양새다.

    “돈 자랑 하는 애들 보면 신분 격차 느껴”
    경제수준이 낮을수록 행복도가 낮아지는 문제의 원인은 학업성적만의 문제로 보긴 어려웠다. 행복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경제적 수준이 ‘상’인 청소년들에게서는 학업 부담을 이유로 꼽은 응답자가 44.8%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경제적 수준이 ‘하’인 청소년들 중에선 가정의 경제적 
    불안 및 자신의 장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행복하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이 40.3%를 차지했다. 경제적 수준이 낮은 청소년들에게선 가정의 경제 상황이 자신의 행복도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컸던 것이다.

    실태조사를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청소년기의 행복감은 청소년들의 또래 관계나 학교 교사와의 관계에서 내려진 ‘평가’에 크게 좌우됐다. 평가의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학업성적이라는 객관적 평가 못지않게 외모나 복장, 취미·여가활동 등을 통해 이뤄지는 서로에 대한 ‘평가’가 청소년의 주관적 행복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청소년 가정의 경제적 수준은 성적뿐만 아니라 친구를 사귀고 친구들로부터 존중과 배려를 받는 정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경제적 수준이 낮아질수록 친구를 사귀기 쉽고 또래와 교사로부터 존중받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낮아졌다. 반면 체벌 및 욕설, 학교폭력, 학교 내 인권침해와 차별 경험 빈도는 높아진다는 사실이 통계에서도 확인됐다.

    갓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교 1학년으로 진학하는 황지영양(가명·15)은 서로를 보는 평가 기준이 자신을 바라볼 때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말했다. 유행하는 헤어스타일을 하고, 화장품이랑 액세서리도 더 비싼 것을 쓸 땐 만족감이 높아지는데, 최소한 다른 친구들이 쓰는 수준만큼도 돈이 없어서 못따라가면 우울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 크게 좌절감을 맛볼 때는 따로 있었다. 황양은 “수행평가나 공모전이 있을 때 외국 갔다온 것, 비싼 전시회 갔다온 것 자랑하는 애들을 보면 정말 신분 격차가 느껴진다”며 자신이 해볼 도리가 없는 수준의 격차를 느낄 때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황양의 말처럼 청소년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는 경제적 수준에 영향을 받았다. 경제적 수준이 ‘하’인 청소년 중에서 자신에게 자랑스러운 점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46.5%로, ‘상’에 속한 청소년의 응답률 21.3%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았다. 

    이렇듯 경제적 요인에 더 중점을 두는 경향은 학년이 높아질수록 강해졌다. ‘행복에 필요한 것’을 묻는 항목에 초등학교 4학년 중 3.1%만이 ‘돈’이라고 응답한 데 비해 고등학교 3학년들은 26%가 ‘돈’을 행복의 필요조건으로 꼽은 것이다.

    “차별에 대한 경험이 인권에 큰 영향”
    황양 역시 나이가 들수록 경제적 여건이 중요하게 느껴진다며 어려운 경제사정 때문에 
    공부로라도 따라잡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중3까지 같이 놀던 친구 하나가 인터넷고에 가겠다고 한 뒤로 같이 놀던 애들이 점점 멀리하는 걸 느꼈다. 나도 그 친구랑 (경제적)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은데 (일반계) 고등학교 가서 성적에서 밀려 무시받을까봐 걱정된다.” 

    황양은 고등학교에 가기 전에 진도를 맞춰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조바심에 방학 동안에도 학원에 붙어 살았다. 그러나 이미 중학교에서부터 
    선행학습을 하던 친구들과의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최근 늘고 있는 다문화가정의 청소년들에게서도 가정의 소득수준이 낮을 경우 학교 적응에 더 어려움을 겪는 경향은 똑같이 나타났다. 다문화가정 청소년 중 가정의 경제적 수준이 ‘하’로 분류된 청소년들은 ‘하’에 속하는 전체 청소년들의 적응 정도에 비해서도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반면 다문화가정 청소년이지만 가정의 소득수준이 ‘상’과 ‘중’으로 비교적 경제적 어려움이 덜한 가정에서 자랄 경우엔 일반가정 청소년들과 학교 적응 정도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겪는 적응의 어려움이 경제적인 요인 때문에 더욱 심해지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성과 위주의 경쟁사회의 모습이 청소년들이 속한 학교와 생활공간에서도 재현되는 데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특히 청소년들의 일상적 인간관계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학교라는 공간이 학업성적과 입시 위주로 돌아가고 있는 데서 여러 문제들이 파생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청소년들에 대한 정신적 압박으로 작용해 초등학생 7명 중 1명, 고교생 4명 중 1명꼴로 가출 및 자살 충동을 경험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결과 한국 청소년의 행복지수 성적은 참담한 수준으로 드러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회원국 중 2009년부터 5년 연속 최하위를 차지한 것이다. 

    한국방정환재단과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를 집계한 23개 나라 가운데 한국은 22위인 헝가리와 큰 격차를 보이며 최하위를 기록했다. 물질적 행복과 교육 성취도 등의 항목별 지수에서 교육 성취도의 경우 1위를 차지한 반면, 주관적으로 느끼는 행복의 수준은 가장 낮았다.

    경제적 격차가 청소년기의 인간관계와 정서상태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대해 청소년 인권의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경제수준이 차별 및 인권침해를 겪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로 거론되기 때문이다. 

    유성렬 백석대 교수는 “청소년 가정의 경제적 수준이 낮을수록 차별 경험은 많은 데 비해 인권에 대한 인식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특히 차별과 같은 경험이 청소년 인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을 감안해 청소년 인권을 보호하는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신영 한양
    사이버대 교수 역시 “인권에 대한 사고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며 “가정이나 학교에서 청소년을 존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청소년 스스로의 인권의식 또한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출처 : 2014 03/11주간경향 1066호